제로인 제독 7화 : 성지

성지.
이 말을 듣고 양은 무엇을 상상했을까?

우주력 800년, 신제국력 2년 무렵의 성지라고 한다면 지구 그 자체였다. 무역국가 페잔을 뒤에서 지배하는 세력이자 마약을 사용하여 신도를 세뇌하고 테러에 이용하던 광신도 종교 집단인 『지구교』 의 본거지를 말하는 것이다.

할케기니아와 같은 수준의 문명을 이룩했던 지구의 시대에 비교하자면, 『성지』 란 이슬람 교도를 중심으로 한 아라비아 세계의 종교적 중심지였다. 일찍이 가톨릭과 유대교의 성지였으며, 오랜 세월에 걸친 더러운 종교전쟁이 행해졌던 비극의 무대. 역사가로서의 양이라면 중동전쟁이라 불리는 20세기 전후의 지옥 같은 광경을 떠올렸으리라.
그리고 테러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팔레스타인, 21세기의 게토 (Ghetto, 특정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구역) 라는 야유를 받기도 했던 요르단 강 서쪽 해안의 거대한 분리벽 『아파르트헤이트 월』, 예루살렘의 『탄식의 벽』 에다 기도의 말을 바치는 일에만 골몰했던 유다 교 신도들을.
그 벽 위에 이슬람교의 사원 알 아크사 모스크가 그려진 그림은 꽤나 취미가 고약한 사람의 농담처럼 양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터이다.

아울러, 할케기니아의 성지가 실제로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 그는 몰랐다. 시조 브리밀과 관련된 땅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어떤 사연이 있는 땅인지 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건 대부분의 할케기니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할케기니아인과 성지에 사는 아인종인 『엘프』 는 인간과 극도로 험악한 관계에 있으며, 양자의 접촉은 대부분이 전쟁이라는 형태로 행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엘프를 공격했던 인간 측의 수 없는 참패라는 결과로 말이다.
할케기니아의 성지 회복운동은 『레콘 키스타』 란 이름으로 지금도 행해지는 모양이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로부터 약 6000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성지의 탈환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미 성지가 어떤 곳인지는 할케기니아에 사는 어떤 사람도 알지 못했다.

그럼, 양이 소환된 할케기니아의 『성지』 란 대체 어떤 곳일까? 양을 포함한 할케기니아의 많은 사람들이 사막 한 가운데 떠올라 있는 오아시스 도시를, 귀가 긴 엘프들이 살고 있는 돌로 만들어진 마을을 떠올릴 것이다. 시조 브리밀과 관련된 유적이나 묘석 하나쯤은 남아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양의 상상 속에서라면 거기에 모스크나 첨탑이 늘어선 이슬람 스타일의 풍경도 더해질 것이고, 그들의 상상대로 아마 오래 전에는 성지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던 시기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경악과 함께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성지』 의 진실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사람들은 땅에 무릎을 꿇고 하늘을 우러르며 ‘시조의 복음은 할케기니아에서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절망할 것이 분명하다. 양도 눈물을 폭포수처럼 흘리며 분해할 게 틀림없다.

왜냐하면, 『성지』 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곳은 밤의 성지다. 엘프에게 야만인이라고 멸시당하는 인간이 탈환을 노리는 곳이다. 분명히 여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사막조차도 없었다.
두 개의 달 아래에, 그저 한결같이 황야가 펼쳐져 있다. 그것도 커다란 분지처럼 후벼 파진 황야가. 반경 10 리그 이상의 완벽한 분지가 불그스름한 갈색으로 퇴색한 흙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분지의 한쪽 구석에 제방처럼 솟아오른 곳에서 여러 명의 엘프가 서 있었다. 그들은 분지의 중앙 부분을 바라보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분지의 한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둑하고, 휑뎅그렁한 대지의 한 부분을.

분지 한 가운데에서 뭔가가 빛났다.

반짝임과 동시에 뭔가에 둘러 싸이듯 빛이 차단되었다. 그러나 빛을 둘러 싸려는 무엇인가의 움직임보다 빛이 반짝이는 힘이 더 강했던 모양이다. 빛을 막으려던 ‘무언가’ 는 ‘빛’ 에 의해 멀리 날아가 버렸다.

분지가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어서 분지 중앙에 동그란 『벽』 이 생겼다.
『벽』은 달빛 아래에서도 확실히 알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빛』 을 중심으로 하여 분지 주위에 퍼져간다. 흙먼지를 피워 올리며…… 아니, 지반 그 자체를 들쑤시면서 분지의 한쪽 구석에 있던 엘프들에게도 덮쳐 들려 하고 있었다.
그런 엄청난 힘이 주변을 어지럽히는 모습이 빤히 보이는데도, 모든 것을 파괴하며 움직이고 있는데도, 미진하게 땅이 울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벽』 이 음속에 가깝거나 음속을 뛰어넘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소리보다 빠르게 지반을 경유한 진동이 발 밑에서 소리로 변해서 귀에 들려오는 것이다.

“우리와 계약을 맺은 대지의 정령이여. 오래된 맹약에 따라 우리에게 가호를.”

엘프들이 주문 같기도 하고 혼잣말 같기도 한 말을 늘어놓자 마자 그들의 눈앞에서 땅이 솟아올라 거대한 흙과 바위의 벽이 되어 그들을 감쌌다. 엘프들은 달빛도 비치지 않는 암흑 속에서 보호받고 있었다.
10리그 이상 떨어진 먼 곳까지 움직인 『벽』 이 대지의 정령이 만들어낸 벽과 충돌한다.

그 순간 벽 안에서 보호받던 엘프들의 귀에, 아니 온 몸에 굉음이 들려왔다. 그들의 온 몸을 뒤흔들고 몸 속을 휘저으며 고막을 찢어버릴 정도의 진동이. 대지의 정령의 가호조차도 엘프들을 죽음에서 보호해주는 정도가 한계였다.
『벽』 이 지나갈 때까지 걸린 시간은 그렇게 길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죽음을 각오하게 하는 영겁의 시간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

『벽』 의 흔적인 미세한 진동도 사라지고 어둠 속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대지의 정령은 계약을 모두 이행했고, 엘프들은 두 개의 달 아래에 해방되었다. 그들은 조심조심 분지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분지가 있을 뿐이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까보다 좀 더 구멍이 깊어졌다는 것뿐이었다.

『빛』 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비다샤르! 저길 보게!”

엘프 중 한 사람이 하늘을 가리켰다. 비다샤르라고 불린 엘프도 하늘을 올려본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빛이 흐르고 있었다. 별똥별은 아니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거대한 무언가가 확연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그들이 있는 곳 가까이로 낙하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무언가’ 가 폭발음을 울리며 대지에 충돌했다.
그와 동시에 주위의 땅이 마치 촉수처럼 끓어올라 활활 타오르는 ‘무언가’ 를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대지는 낙하해온 물체를 지하 깊숙한 곳으로 끌고 가 버렸다.

끼긱!

비다샤르 일행의 근처에서 메마른 금속음이 들렸다. 그가 땅을 보자 좀 전의 물체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 눈에 띄었다. 대지의 정령은 이 파편이 무해하다고 판단했는지, 땅 속으로 빨아들이지는 않았다.
엘프 중 한 사람이 가볍게 그 금속 파편을 집어 들었다. 어떤 번호판 같은 물건이 폭발의 충격으로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모양이다. 검게 그을린 번호판을 옷소매로 닦아내자 그림이 보였다. 빨간색, 하얀색, 파란색 선이 세 줄 있고 그 한 가운데에 오망성이 그려져 있었다.

그게 자유행성동맹의 국기라는 사실을 엘프들은 알지 못했다. 성지로 흘러 들어오는 거의 모든 것이 오늘밤과 마찬가지로 땅 속에 봉해지고 있었으니까.






7화 : 성지






갈리아 왕국.
트리스테인과 거의 같은 문화를 지닌 나라로 인구 약 1500만 명의 대국이다.

마법의 선진국이라고 정평이 난 곳이라 왕궁에선 여러 가지 마법인형 (가고일) 이 사용되고 있다. 수도의 이름은 류티스로 트리스테인과의 국경에서 1000리그 떨어진 내륙에 위치한다. 수도 주변은 큰 바다로 흐르는 시레 강 유역이다. 인구 30만을 자랑하는 할케기니아 최대의 도시이며, 강 중류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마법학교를 필두로 귀족 자제가 다니는 다양한 학교가 설립되어 있고,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거리를 자랑한다.

교외에는 웅장하고 커다란 궁전이 눈에 띈다. 왕족이 생활하는 성인 베르사르테일 궁전이다. 두 줄의 선이 들어간 구부러져 짜맞추어진 지팡이 그림을 왕가의 문장으로 삼고 있다. 궁전 중심부에는 장밋빛 대리석과 푸른 벽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왕성 『그랑 트로와』 가 있고, 거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연분홍색의 작은 궁전 『쁘띠 트로와』 가 있다.

“―― 다시 말해, 『허무』 가 모이는 걸 방해해줬으면 한다는 건가? 비다샤르인가 뭔가 하는 엘프여.”
“그렇다. 너희들이 성지라고 부르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샤타인 (악마) 의 문』 은 우리들의 힘으로도 완전히 봉인할 수는 없다. 바람과 대지의 정령이 녀석들이 만들어 낸 폭풍을 잠재우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하기 어렵다.”

『그랑 트로와』 의 어느 방 의자에 앉은 갈리아 왕 죠제프는 이국에서 온 손님을 만나고 있었다.올해로 마흔 다섯이지만 30세 전후로밖에 보이지 않는 미모와 다부진 몸을 가진 이 남자는, 연갈색의 로브를 몸에 두른 귀가 긴 엘프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흐음… 다소 믿기 어려운 이야기군. 너희 엘프들 조차도 대등하게 겨룰 수 없는 성지에서 출몰하는 악마… 라.”
“아니, 그건 아마 악마는 아닐 것이다. 바람과 대지의 정령이 말하길, 그것들은 나타나자마자 산산이 부서지고 화룡의 브레스를 뛰어넘는 불길에 흽싸여, 바람의 정령도 어쩌지 못할 정도의 폭풍으로 대지를 도려내고는 죽는다고 한다. 그것도 수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독을 뿜어내면서. 설령 그것들이 나타나자마자 죽지 않는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지면에 충돌해서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들 엘프가 모든 힘을 기울여 대지의 정령의 힘을 빌려 온 대지의 깊고 깊은 곳에 그것들을 봉인했기에 아직까지 그 이상의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독을 몸에 품은 대지의 탄식과 분노는, 이제는 어떤 방법으로도 잠재울 수 없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문』 에서 튀어나왔기에 그것들은 죽고 마는 거겠지. 주변에서 악마라 불릴 정도의 피해를 주는 것도 문을 통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도 죽고 싶어할 리는 없으니까
“그들이라고?”

갈리아 왕가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푸른 머리가 흔들린다.

“그래, 그들이다. 극히 드문 경우지만 그것들, 『악마』 에는 사람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그것도 너희들과 같은 야만인이.”
“호오… 그거 만나보고 싶군.”

엘프의 긴 금발은 사락사락 좌우로 흔들린다.

“무리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문을 통과함과 동시에 거의 대부분이 죽고 만다. 그 뒤에 남는 건 재가 되어버린 야만인의 시체. 그것도 운이 좋을 경우의 이야기다.”
“… 어째서 죽어버리는 건가? 그렇게나 화려하게 나타나서는.”
“알 수 없다. 모든 건 땅 속에 봉인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나도 이유를 알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선 독을 마실 위험을 무릅쓰고 땅 속으로 들어갈 각오가 필요하다.”

죠제프는 ‘흐으음..’ 하고 한숨을 쉬며 의자에 몸을 맡긴다.

“흥미롭군… 실로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것들 모두가 『허무』 의 힘, 샤타인의 부활에 따른 것이라고?”
“그렇다. 튜류크 총령을 비롯해, 우리들 네프테스 중에도 두려워하는 자가 늘어나고 있다. 요 수십 년간 활발해진 문의 활동에 때맞춰 세계를 멸망시킬 대재앙이 육천 년의 시간을 지나 다시 도래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과연, 그렇군.”

죠제프는 문득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아까 『거의 대부분이 죽는다』 고 했는데, 지금까지 살아서 문을 빠져 나온 자는 없었나?”

비다샤르는 진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으음… 실은 무사히 문을 빠져 나온 이의 선례가 있다.”
“호오? 자세히 얘기해 봐라.”

갈리아 왕은 흥미로운 듯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두 가지의 예다. 하나는 60년 정도 전이다. 그 때의 문에는 빛도, 폭풍도 없었다. 그건 문에서 튀어나와서는 대지와 바람의 정령의 손을 뿌리치고 서쪽의 먼 곳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그 뒤의 일은 모른다. 아마도 너희들 야만인의 세계로 향했던 거겠지.”
“호오… 또 하나는?”
“또 하나의 예는 약 30년 전의 일이다. 그 때도 문에서는 빛도 폭풍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문에서 철의 마차가 튀어나왔던 거다. 말도 없이 달리는 그 마차는 차체 전부가 철로 뒤덮인 듯 했다고 한다.”
“… 미안하지만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군.”

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즐거운 듯 입 끝을 일그러뜨리고 있다.

“유감이지만 나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 그만큼 기묘한 사건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마차는 있는 힘을 다해 대지와 바람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흙먼지를 피워 올리며 달려갔다. 성지를 둘러싼 흙더미를 뛰어넘어 사막을 달려, 우리들 엘프의 마을을 향해서.”
“호오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죠제프는 한층 더 엘프를 향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죠제프와의 거리를 의식하며 비다샤르는 괴로운 듯 말을 이었다.

“그 철의 마차는 정령에게 쫓겨 공황상태였던 모양인지, 우리를 향해 돌진해 왔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정령의 힘을 빌려 철의 마차를 멈추려 했다. 그러자, 그 마차는 불을 뿜었다.”
“불을?”

엘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차에는 대포가 실려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대지의 정령의 가호에 의해 만들어진 바위 벽을 뒤에 숨어있던 동포와 함께 꿰뚫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위력의 대포가. 『반사』 의 마법으로 튕겨내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의 대포가 말이다.”
“뭣이!?”

마차에 대포를 싣다니… 혹시 할케기니아에서 그런 짓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무거워서 마차는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중량이 너무 무거워 찌부러진다. 찌부러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마차를 만든다고 해도 무거워서 바퀴가 땅에 박혀 움직이지 못한다. 말을 동원해도 마찬가지다. 설사 돌로 포장된 길이라고 해도 대포를 쏘면 그 반동으로 마차가 뒤집어질 것이다.
엘프의 선주마법에 의한 방벽을 뚫지 못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아마 그 전에 『반사 (카운터)』 의 마법으로 포탄이 되돌아 오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철의 마차는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런 짓을 해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그 철의 마차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을은 재가 되었다.”

죠제프의 뺨에 식은땀이 한 줄기 흐른다.

“혹시나 해서 묻는다만… 그 마을에는 몇 명의 엘프가 있었나?”
“적어도 500명. 싸울 수 있는 자는 100명 정도 있었다.”

왕은 이미 할 말을 잃었다.
인간이 아무리 성지회복운동을 했어도 엘프의 10배를 넘는 병력으로 공격했을 때를 제외하고 승리한 적은 없다. 그럼 그 철의 마차 한 대는 인간 1000명 이상과 거의 동등한 힘을 지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철의 마차를 멈춘 후 몇 명인가의 동포가 그 안을 조사해 보았더니 역시 야만인이 있었다. 생존자는 한 명이었으나 기절해 있었다고 한다.”
“호오!! 그래서, 지금 그 생존자는 어디에 있나!?”

죠제프는 의자를 넘어뜨리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비다샤르는 안됐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생존자가 ‘있었던 듯 하다’ 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 마차를 조사했던 동포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모두 의식을 되찾은 그 ‘생존자’ 에게 살해당했다. 상처 입은 야만인 단 한 명에게 말이다. 게다가, 멈추었다고 생각한 마차는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생존자는 마차를 몰아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도망쳐 버렸다. 우리는 이미 쫓아갈 수가 없는 상태였지.”

죠제프는 다시 자리에 앉아 턱에 손을 대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럼, 아마도 그 자는 할케기니아, 어쩌면 갈리아로 향했을지도 모르겠군…”

그 말에 비다샤르는 다시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기대는 할 수 없다. 마차 자체가 우리들과의 싸움으로 상당히 파손되었다. 도망치기는 했으나 이미 더 이상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리고 안에 탄 생존자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겠지.”
“그런가…”

엘프는 괴로운 듯 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었다. 마차를 멈추는 게 아니라 정령들에게 그들을 추적하지 않도록 부탁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는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정령에 의한 성지의 봉인을 풀 수는 없다. 성지에서 휘몰아치는 폭풍과 독을 최소한으로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지금도 성지에선 악마들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요 수십 년간 점점 더 과격해지고 있다.”

갈리아 왕은 눈을 감고 머리를 기울여,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런 뒤 다시 엘프를 바라보았다.

“과연, 경의 이야기는 실로 흥미로웠다. 허나 우선, 우리가 너희들 엘프와의 교섭에 나서길 바란다면 그에 상응하는 신용과 대가를 보여주는 게 어떤가?”
“음, 우리도 고려하고 있다. 아무래도 교섭을 진행시키는 게 우선되어야 할 테니까.”

죠제프와 비다샤르의 회견은 그 뒤에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장소는 바뀌어 트리스테인 마법학원. 『프릭의 무도회』 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제플 입자 발생장치는 다시 보물 창고로 돌아갔다. 학원으로선 큰 손해를 본 셈이지만, 이미 그 항아리는 보물도 뭣도 아니라는 게 밝혀졌기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도끼는 다음 날 트리스타니아에서 달려온 엘레오놀과 공작이 가져갔다. 공작은 양의 공을 솔직하게 칭찬했고, 엘레오놀은 거만한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어쨌든 『잘 했다, 칭찬해 주지.』 하고 고마워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기사들로 구성된 대 부대에게 호위를 받으며 떠났다.
어떻게 『파괴의 항아리』 와 『다이아의 도끼』 를 무사히 되찾을 수 있었는지, 공작도 엘레오놀도 성의 기사들도 궁금해 했다. 결국 「항아리는 텅 비었다는 걸 확인했으니 버렸을 테고, 도끼는 매직 아이템도 아니고 평민이 가진 물건이니 돌려주었을 것이다」 라는 결론과 함께 사건은 수습되었다.

그건 그렇고, 사역마를 보면 메이지의 격을 알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럼 지금의 양을 보면, 루이즈에 대해서는 뭐라고 평할 수 있을까?

다이아몬드 날의 도끼라는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걸작품과 더불어 반쯤 죽어있는 상태로 소환된 양. 공작으로부터 궤짝 한 가득 금화를 받고, 왕실로부터 도끼의 대금이 매달 주어지게 될 예정인 그는 이미 일개 평민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당한 부자가 되었다. 웬만한 귀족 이상으로 수입이 좋은 것이다. 알비즈의 식당에선 귀족 자제들을 앞에 두고도 겁먹는 기색 없이 주인을 변호했다. 푸케에게 빼앗겼던 『파괴의 항아리』 와 『다이아의 도끼』 도 되찾았다.

이 정도의 능력이 있다면 전설의 영웅까진 아니더라도, 뭔가 뛰어난 인물이 소환되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법 성공률과는 관계 없이 루이즈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올라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넌 왜 맨날 나랑 같이 일어나는 거냐고~!! 가끔은 먼저 일어나서 날 좀 깨워 보란 말이야~!!”
“루이즈… 남에게만 의지하면 못써. 사람이 노력을 해야지.”
“노력은 네가 해!!”
“그럼, 델 군에게 부탁할까?”
“네・가・!!! 노력하라고 말하고 있잖아~!!!”

두 사람은 그런 대화를 나누며 식당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주인과 사역마가 매일 이런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으니 아무리 주위의 평가가 올라갔다고 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땅 끝까지 곤두박질 치는 거겠지.
루이즈는 이 정도로 늦잠꾸러기 학생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양의 나쁜 영향을 한껏 받게 된 모양이다.
안 그래도 양은 늘 멍해 보이는 태도에, 자다가 일어난 것 같은 눈에, 약간 새우등이다. 겉보기에는 이미 정말 변변찮은 중년 아저씨였으니까.
그런 양에게도 늘 언제나 변하지 않는 구석이 하나 있다. 양 손에 얇은 하얀 장갑을 끼고 있는 것이다. 오스만에게서 왼손의 룬이 『간달브, 전설의 사역마의 증표』 라는 이야기를 들은 양은, 금새 룬을 감추어 버렸다.


그리하여 그 날 오전.
본관 탑 최상층의 원장실에선 오늘도 오스만이 중후한 만듦새의 세쿼이아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코털을 뽑고 있었다.
오스만은 천천히 「으음」 하고 중얼거리며 서랍을 열고는 안에서 물 담뱃대를 꺼냈다.
그러자 방 구석 책상에 앉아 책상 위의 서류를 가방에 넣고 있던 비서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물 담뱃대가 하늘로 떠올라 비서의 손에 날아갔다.
섭섭하다는 듯 오스만 씨가 중얼거린다.

“노인네의 즐거움을 빼앗아가니 즐거운가? 미스 롱빌.”
“올드 오스만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제 일인걸요.”

비서는 가방을 손에 들고 일어서 방을 나가려 한다. 그러나 그 전에 책상 아래로 지팡이를 들이대었다.

오스만 씨는 고개를 숙였다.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읊조렸다.

“모트소그닐.”

비서의 책상 아래에서 작은 하얀 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스만 씨의 다리를 지나 어깨에 착 올라타고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오스만 씨는 쥐에게 땅콩을 주며 한쪽 귀를 기울였다.

“그런가… 보이지 않았느냐. 유감이구먼.”

비서는 가방을 다시 책상에 올려놓고 잠시 후 아무 말 없이 상사를 발로 걷어찼다.

“미안하네, 멈추게, 아파!! 아니, 이건 요즘 유행하는 노인 학대인가? 괴롭구먼~”
“원장님께는 아주 정나미가 뚝 떨어질 것 같군요! 양의 사건으로 알았습니다. 노인이라고 해서 부드럽게 대해선 안 된다는 걸! 성희롱이 모든 여성에 대한 모욕이며 범죄라는 사실을 그 몸으로 직접 깨닫게 해드리죠!”

롱빌의 입장에서 보자면 『파괴의 항아리』 가 단순한 잡동사니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이제 학원에 일부러 남아있을 필요는 없었다. 단순히 푸케 소동으로 인한 파문이 가라앉을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니 이제 원장의 성희롱을 참을 필요도 없었다.

씩씩 숨을 몰아 쉬면서 다시 책을 집어넣은 가방을 손에 든다.

“그럼 전 도서관에서 양에게 강의를 하고 오겠습니다. 원장님도 꾀부리지 말고 일을 하세요!”
“그, 그럼, 미스 롱빌… 비서 일은?”

‘찌릿!’ 하고 치켜 올라간 눈매로 롱빌이 자기를 노려보는 바람에 오스만은 뱀 앞의 개구리처럼 움츠러들고 말았다.

“오늘 아침엔 급한 일은 없습니다! 전부 오후에 끝낼 거예요.”

‘쾅!’ 하고 큰 소리를 내며 문을 닫은 롱빌은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롱빌은 도서관에 들어가기 전에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의 거울 앞에 서서 원장을 응징하느라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고, 입술에 루즈를 바른다.
옷 매무새도 가다듬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다시 한 번 체크하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아침 식사의 뒷정리를 하던 두 메이드가 롱빌의 그런 모습을 보았다.

“어머? 저거 미스 롱빌 아냐? 콧노래를 흥얼대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아, 알겠다. 그거야, 그것 때문이라고, 카미유! 도서관에서 양 씨와 개・인・교・습!!”
“뭐어!? 진짜? 진짜? 도미닉, 정말이야~!?”
“뻔하다니까! 양 씨도 참, 저렇게 멍해 보여도 정말 대단하다니까.”
“그건 그렇네. 양 씨는 특이한 사람이라니까. 게다가 지금은 웬만한 가난뱅이 귀족보다 훨씬 부자기도 하고.”

두 메이드의 만담 같은 잡담은 멈출 줄 모르고, 여기에 지나가던 다른 메이드들까지 합세하여 점점 더 이야기는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양은 의외의 부분에서 평가되고 있다고 할까, 혹은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도서관에 들어간 롱빌은 창가의 테이블에서 양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웃는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왜냐하면 양은 한 손에 찻잔을 들고, 다른 손에는 접시를 들고 서있는 시에스타와 즐거운 듯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 타르브의 와인이라, 맛있을 것 같네.”
“맛있어요! 타르브에서는 굉장한 양질의 포도가 잔뜩 수확되거든요. 꼭 한번 놀러 오세요. 양 씨도 반드시 맘에 들어 하실 거예요!”

‘어험’ 하고 롱빌이 짐짓 꾸민 듯한 헛기침을 했다.
시에스타가 황급히 사무적인 메이드의 표정으로 돌아가 비서에게 인사를 했다.

“그럼, 양 씨. 미스 발리에르의 방 청소와 빨래는 제게 맡겨 주시길.”
“아, 괜찮아. 그건 내가 나중에…”

‘아뇨, 괜찮아요~’ 하고 한 마디를 남기고는 시에스타는 가버렸다.


롱빌은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면서 양의 앞에 쿵 하고 앉았다.

“과연 장군님. 영웅호색… 이란 거야?”

롱빌의 따가운 시선에 양은 당황하여 고개를 젓는다.

“이, 이봐. 잠깐 잡담 좀 한 것뿐이야. 이래뵈도 난 처자식이 있는 몸이라고.”
“글쎄 어떨까… 뭐, 조심하도록 해. 당신이 손에 넣은 돈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녀석은 줄줄이 늘어서 있을 테니까. 이 나라에 관해서 잘 모른다는 걸 빌미로 이용해 먹으려는 녀석들도 있을 거고.”
“그렇구나, 정신 차려야겠네. 그건 그렇고, 그 가방 안에 들은 건 내가 부탁했던 거야?”

양의 시선은 그녀가 가져온 가방 쪽으로 향해 있다.

“응. 시조 브리밀 루 르밀 율 비리 베 바르토리와, 간달브 전설에 관한 자료야. 남아있는 건 옛날 이야기 수준의 전승 뿐이지만.”
“괜찮아. 간단하게라도 배울 수 있다면 좋으니까.”

그렇게 두 사람은 점심때까지 수업을 계속했다.


점심때가 되어 양은 주방에서 식사를 했다.
양은 늘 식사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할 정도로 도서관의 책을 읽고 싶어했다. 그래서 점심식사는 대부분 샌드위치 류의 가벼운 것으로 부탁하곤 했다. 빵에 끼워진 음식을 보고 있으면 샌드위치, 햄버거, 크레이프 등 끼워 만드는 음식만큼은 특기라고 말하던 아내 프레데리커를 떠올리게 된다. 할케기니아에 소환되기 전이 되어서야 겨우 제대로 된 밥을 해주었는데, 지금쯤은 뭘 하고 있을까? 문득 향수에 젖고 말았다.

‘그런 향수에 젖게 하는 원인을 만들어 준 주인님은 뭘 하고 있을까?’ 하고 궁금해진 양은 주방에서 식당 쪽에 눈을 돌린다. 테이블에 앉아 점심식사를 하는 루이즈의 모습이 보였다.
테라스에 교사들의 모습은 없었고, 학생들은 모두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귀족의 식사시간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루이즈는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담담히 밥을 먹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자 금새 식당에서 혼자 나가 버렸다. 그 뒤에는 담소를 나누는 학생들의 무리가 남았다.


양은 일찍이 양자인 율리안에게 「운명이란 늙어빠진 마녀처럼 심술궂은 얼굴을 하고 있다」 고 말한 적이 있다. 할케기니아의 나이 든 여자 메이지들은 평범하게 나이를 먹은 여성의 모습이었으니 그 이야기는 잘못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운명이 양에게 바라지도 않던 군인생활을 10년 이상이나 강요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루이즈에게도 『제로』 라고 멸시당하는 생활을 강요했다. 유력귀족으로 태어난 어설픈 메이지.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파온다.

“전쟁고아였던 율리안은 트라바스 법 (군인자녀 복지 전시특별법) 때문에 내 양자가 되어 열심히 날 보살펴 주었지… 아니, 내 시중을 강제로 떠맡게 되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런 혼잣말을 하면서 그는 당장 루이즈의 방으로 향했다.


“여~ 공부는 끝나셨나?”

시에스타가 청소를 해서 깨끗해진 루이즈의 방. 벽에 걸려있던 델프링거가 칼집에서 빼꼼히 머리를 내민다.

“응. 간달브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왔지. 그럼, 이번엔 『사용자』 가 무엇인지 좀 가르쳐 주겠어?”

양은 롱빌에게서 들은 정보를 델프링거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뭔가 떠오르는 거 없어?」 하고 물어보았다. 검의 대답은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암~것도 안 떠올라!”

‘쿵’ 하고 양의 머리가 흔들린다.

“그렇게 말하고는 있어도 자네는 육천 년이나 살아왔잖아? 다시 말해 시조 브리밀과 같은 시간을 살고 있었던 거지. 그리고 내 룬을 보고 그립다는 느낌도 들었지? 그럼 『전설의 사역마 간달브』 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이봐, 말은 쉽지만 말이야… 육천 년 전 일이라고. 기억날 리가 없잖아.”

이번에는 한숨을 쉬고 말았다.

“자네는 쓸데 없이 인간 수준의 AI를 탑재하고 있는 모양이군.”
“그거, 칭찬이냐?”
“응, 칭찬이지.”
“사기꾼.”
“들켰나.”

컴퓨터라면 외장형 기억장치를 몇 개라도 붙일 수 있지만, 이 검은 아무리 봐도 그런 걸 연결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럼, 우뭇가사리로 국수 만들듯이 오래된 기억을 지워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기억이 들어갈 용량을 확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어차피 판타지 세상인데 그런 부분만 과학적일 필요는 없나..’ 하고 어깨를 늘어뜨리는 양. 결국 그 날 오후는 헛수고나 하며 시간을 때우고 말았다.


그리고 방과 후.
델프링거를 한쪽 손에 든 양은 또 마구간 앞에서 루이즈와 만났다.

“늦었잖아! 자, 오늘도 철저히 특훈이야!”

루이즈가 든 승마용 채찍이 유격 조교의 몽둥이처럼 보였던 건 아마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게르마니아에 대해 알고 싶다고!?”

양의 말과 나란히 달리며 루이즈는 웬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 목청을 높였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왜 그런 얼렁뚱땅 만들어진 나라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건데!?”

변함없이 벌벌 떨면서 말을 타는 양은 겨우겨우 대답했다.

“그게, 슬슬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졌거든. 그리고 이번에 공주님이 시집가는 나라잖아? 이웃 나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게르마니아는 발리에르 가의 바로 옆이라고 해서.”

‘째릿!’ 하고 루이즈가 양을 노려본다.

“그래… 그 체르프스트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원수야.”
“그럼 간단한 얘기네. 손자 왈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고 했어. 아, 손자는 내가 살던 나라의 병법 학자야. 적의 정보를 모으는 건 정치와 군사 양쪽의 책략을 세우는 데 기본이거든.”

‘으으…’ 하고 굴복하기 싫은 듯 소리를 내는 루이즈는 떫은 표정으로 말고삐를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난 게르마니아에 대해 그다지 잘 알지 못해.”

기다렸다는 듯이 양이 회답했다.

“그럼, 선생님을 모셔오자!”

루이즈의 표정이 점점 더 떫어졌다.


“과연, 과연! 생각 잘 했어. 게르마니아에 대한 거라면 뭐든지 나한테 물어보세요~♪”
“그럼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미스 체르프스트.”

그렇게 해서 해가 지자 루이즈의 방에는 퀴르케가 오게 되었다. 물론 루이즈는 노골적으로 싫다는 얼굴이다. 루이즈의 그런 표정과는 반대로 퀴르케는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퀴르케의 뒤에는 타바사가 따라와 있다.

“정말, 왜 퀴르케 같은 애가 내 방에 들어와야 하는 거야! 조상님들께 뭐라고 사죄를 드려야…”

어깨를 부르르 떨며 불쾌해하는 루이즈였지만 퀴르케는 천연덕스러운 얼굴이다.

“그렇지만 이번에 우리나라 황제 알브레히트 3세랑 트리스테인의 앙리에타 공주가 결혼하잖아? 군사동맹을 맺으려고. 그럼 우리도 과거의 원한은 자연스레 잊어버려야지, 안 그래?”

‘으으으~’ 하고 으르렁거리며 루이즈는 반론도 못 하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면, 양이 부탁한 대로 게르마니아에 대해서 가르쳐 줄게. 고맙게 자~알 들으라고?”

벽에 걸려있던 델프링거가 갑자기 한 마디 했다.

“이봐, 이봐, 양! 젊은 아가씨들한테 둘러싸였다고 해서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델 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 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양의 얼굴은 빨갛게 물든다.

그리하여 테이블에 둘러싸고 퀴르케의 게르마니아 강좌가 시작되었다.
타바사도 조용히 의자에 앉는다. 퀴르케의 강의를 경청할 생각인 모양이다.


“… 그렇게 해서 그 황제는 자기가 즉위하기 위해서 정적(政敵)인 친족들을 전~부 탑에 유폐시켜버렸어! 튼튼한 문이 달린 방에 가둬놓고는 매일 빵 하나에 물 한 컵, 난로에 넣는 장작은 일주일에 두 개밖에 안 준다니까?”
“우와, 너무 심하잖아.”
“예나 지금이나 왕족이란 것들이 하는 짓은 야비하구만.”

퀴르케가 이야기한 내용은 세력다툼에서 살아남아 황제의 자리를 취한 야심의 결정체 같은 남자의 악행이었다. 델프링거가 진저리를 치며 감상을 토해냈다. 이야기를 듣던 루이즈도 무서워하고 기가 막혀 하면서도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어갔다.
타바사는 변함없이 무표정이다. 그래도 열심히 듣는 것 같다.

“어때? 양도 이렇게나 잔인한 황제에 대해선 그다지 들어본 적 없지?”

퀴르케에게 질문을 받은 양은 ‘음…’ 하는 소리를 내며 천장을 바라보고는 생각에 잠긴다.

“글쎄, 어떨까. 내 이웃나라에선 그에 버금가는 일을 해서 황제가 된 사람이 있었어.”

루이즈는 옆에 앉은 양을 흘낏 본다.

“흐응~ 그건 예전에 말했던 프리 플래닛이라는 나라 얘기야?”
“아니, 프리 플래닛은 내가 살던 나라의 이름이야. 그 황제는 로엔그람 왕조를 세운 초대 황제 라인하르트 1세라고 해.”

양은 문득 이런 머나먼 이국의 이야기 같은 건 재미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주변의 세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의외로 세 명 모두 흥미가 동한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할케기니아에서도 통하는 말을 써서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었다.


―― 제국군 세 장관을 한 몸에 모은 제국군 최고사령관이 되어 문벌귀족 세력을 타도하였다.
제국수상을 배제하고 스스로가 수상을 겸임. 어린 황제의 곁에서 사실상의 지배자가 되었다.
문벌귀족의 잔당으로 하여금 어린 황제를 유괴하게 하여 동맹에 망명시켜 전쟁을 일으킬 구실을 만들었다.
골덴바움 왕조에서 황제의 자리를 선양 받았다. 사실상 찬탈이었지만.
23세에 로엔그람 왕조를 세우고 초대황제 라인하르트 1세로서 즉위했다.
그리고 제국수상 일족의 여자와 아이들은 변경으로 유폐하였다. 10살 이상의 남자는 전부 사형시켰다. ――

여기까지 이야기한 시점에서 그녀들의 반응은…

루이즈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특히 23살에 황제가 되었다는 대목에서.
퀴르케는 말 그대로 감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타바사는 역시 무표정이다. 하지만 제대로 듣기는 했던 것 같다.
델프링거는 이번에도 ‘인정머리 없는 형씨구만~’ 하고 질렸다는 목소리를 냈다.
어쨌든 다들 끝까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었기 때문에 양은 만족했다.


“뭐 그렇게 돼서, 내가 살던 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황제한테 지기만 했어.”

끝까지 들어줘서 고맙긴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참 재미없는 이야기라 금새 우울해져 버릴 것 같다.
다시 눈길을 돌려 여성진을 보니, 양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뭔가 납득했다는 듯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 다들 고개를 끄덕였는지는 굳이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야~ 대단한 황제네. 저기, 저기! 당신네 나라의 이야기, 좀 더 해주면 안 돼?”

그렇게 말한 퀴르케는 양에게 스르르 다가와 가슴을 들이댄다.

“아니, 난 게르마니아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데…”

퀴르케의 접근에 양은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자기의 반 정도 나이밖에 안 되는 아가씨에게 전략적 후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뒷걸음질 치고 있었던 것이다.
양을 사이에 두고 반대쪽에 있던 루이즈가 휙 하고 양을 잡아 끈다.

“뭐 하는 거야, 너! 진지하게 강의를 하라고!”
“어머, 어때서 그래? 내 나라 이야기만 하기보다는 양이 살던 나라의 이야기도 듣는 게 좋지 않아?”

젊은 아가씨 둘에게 좌우에서 잡아당겨진다는 경험은 그의 인생에서 좀처럼 없었던 것이었다. 양도 땀을 뻘뻘 흘리며 곤란해 하고 있다. 그 꼴을 보던 델프링거의 웃음소리가 겹쳐진다.
타바사는 강의가 끝났다고 판단했는지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루이즈의 방에선 늦은 밤까지 여자들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밤도 깊어져 다들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후아암~ 고맙습니다, 미스 체르프스트.”
“아잉, 차암~ 이제 퀴르케라고 불러달라니까아~”
“그렇게 불렀다간 가만 안 놔둘 거야! 이제 늦었으니까 빨리 돌아가라고!”
“네, 네. 그럼 내일 봐요오~”

퀴르케와 타바사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후아암~ 그럼 루이즈, 난 화장실에 갔다 올게.”
“… 하암… 딴 데로 새지 마.”

양은 방에서 나와 기숙사 탑을 뒤로 했다. 여자 기숙사 탑에는 여자만 살고 있기 때문에 여자 화장실 밖에 없다. 그러니 직원용 화장실에 가는 수밖에.


“여, 좋은 구경 했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양을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숙사 탑 앞에 서있는 건 롱빌이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야? 이런 오밤중에, 새로운 사냥감이라도 찾았나?”
“그런 게 아냐. 직업상 야행성이거든. 그래서 그냥 가볍게 밤거리라도 걸어볼까 해서 나왔더니 기숙사 탑 창문에 너희들 모습이 보여서.”

그렇게 말한 롱빌은 양에게 다가온다.

“그건 그렇고, 의외네. 당신, 그 주인님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응? 무슨 얘기야?”

시치미를 때듯 어깨를 움츠리는 양.
하지만 롱빌은 진지한 표정으로 양을 바라보고 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양은 포기했는지 숨을 쉬고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나한테는 아들이 있었어. 전쟁고아였지. 이름은 율리안이라고 해.”

롱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양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애는 나라의 정책 때문에 우리 집에 양자로 와주었어. 내 시중도 참 잘 들어주었지… 정확히는 내가 마구 부려먹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까.”
“당신, 손이 많이 갈 것 같은 타입이니까 말이야.”
“사실 그래. 식충이라고 불렸던 건 폼이 아니거든.”
“그게 자랑할 일이야?”

롱빌은 킥킥대며 녹색 머리를 흔들고는 웃었다.
양도 웃음을 터뜨린다.

“그 애는 정부에서 우리 집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아 내 아들이라는 입장을 강요당했어. 그렇지만 불평하기는커녕 정말로 훌륭하게 날 돌봐주었지. 청소도, 빨래도, 밥도 잘 했고, 심지어 차까지 완벽하게 탔어. 그야말로 집안 일에 대해선 불평을 말할 수 없을 만큼 잘했어.
그 뿐 아니라 군대에까지 들어가서는, 반드시 날 지켜주겠다고 말하기도 했어.”

롱빌은 웃음을 멈춘다. 양의 눈동자에 적막함이 깃들었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연 ‘난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사역마라는 입장을 강요당했을 때 난 그 자리에서 루이즈의 곁을 떠나려고 했어. 게다가 집안 일은 하나도 못 하지. 루이즈를 지키라고 해도 그 아이가 이 할케기니아의 귀족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걸 지켜줘야 한다니, 나한테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야.”
“… 그래서, 하다못해 그 애의 친구라도… 되 주려는 거야?”
“으음, 글쎄… 뭐 그런 걸까. 내가 생각해봐도 참 거만하고 제멋대로인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당신을 노예로 삼으려고 했던 앤데도?”
“하지만 난 그 애의 노예가 되지 않았어. 그럼 그 일은 잊어버려도 상관 없는 거 아닐까?”

양은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인다. 그리고 ‘비웃거나 바보 취급 당하겠지…’ 하는 생각에 롱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미소 짓고 있었다.

“당신, 참 군인 답지 않은 사람이네.”

감탄했다는 듯이 기쁘게 말하는 롱빌.

“하하,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

양은 롱빌의 단정하고 지적인 눈을 본다. 달빛에 비춰지는 녹색 머리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무심결에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숙이고 또 한번 머리를 긁적이고 말았다.

그런 양의 조금 굽어있는 등을 롱빌은 ‘팡’ 소리를 내며 두드렸다.

“뭘 그렇게 침울해져 있어! 그런 꼴로 그 애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켁! 아, 아니. 생각해보기는 했어도… 난 언제까지 할케기니아에 있을지도 모르는 몸이잖아.”
“그럼 곁에 있는 동안에는 그 아이를 지켜줘야지! 어차피 데려갈 사람이 올지 안 올지는 아직 모르잖아?”
“응. 뭐.. 그것도 맞는 말이네.”
“그럼 빨리 그 애 방으로 돌아가라고. 분명 외로워서 울고 있을 걸?”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그럼, 잘 자.”

양과 롱빌은 손을 흔들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두 개의 달은 밤의 어둠 속에서도 학원을 밝게 비춰주고 있다.
그래서 트리스테인 마법학원은 어딘지 모르게 성스러운 곳처럼 보였다.





7화 : 성지 END
by 시대유감 | 2008/07/04 19:30 | 자주번역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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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별소리 at 2008/07/04 23:29
할케기니아에서도 '개인교습'은 뭔가 의미심장한가 봅니다(...)
Commented by 시대유감 at 2008/07/05 06:04
센코프인가 포플런인가가 사람 마음 속은 원시시대고 지금이고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죠. 판타지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Commented by Reality at 2008/07/05 03:03
잘 보고 있습니다. 전부터 덧글을 달았어야 하는데...
이 물건은 정말 크로스오버 팬픽 치고는 간만에 제대로 된 물건을 보는 느낌이더군요.

...워낙 제로마X페이트라는 너무 우려서 우릴 게 나오지 않는 장르를 예전에 많이 보다 보니... 어휴 답없는 달빠들[...]
Commented by 시대유감 at 2008/07/05 06:15
제로마X페이트면 세이버라도 부르나요... 근데 페이트는 그 자체로도 크로스오버가 많이 나오는 물건인데 어휴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막 연상이 됩니다 나도 달빤가 (...)
크로스오버 팬픽은 종류도 많고 소환하는 인물도 많은데 쓰는 분이 책임감을 갖고 작업하시거나 네타가 되는 물건과 제로마의 융합이 좀 삐걱거리거나, 결정적으로 완결이 안되거나(!) 하는 등의 문제들이 있죠. 전 주로 단편이나 연재주기가 일정해 보이는 장편이 아니면 아예 손을 대지 않고 있습니다만... 가끔 너무 땡기는 조합이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보기도 합니다; 제로마X드래곤볼이라던가..
Commented by 地上光輝 at 2008/07/05 18:11
제로마X크툴루...같은 거 나오면 대략 낭패(...).
Commented by 시대유감 at 2008/07/06 01:40
하나 있는 걸 보긴 했는데 전 크툴루 쪽에는 면식이 없는지라 읽어보진 않았습니다. 주소는 http://www35.atwiki.jp/anozero/pages/801.html
완결도 난 SS인 모양이군요.
Commented by CARPEDIEM at 2008/07/10 08:25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SS류 번역은 꽤 힘든 편인데 깔끔하고 보기 좋군요. ^^)b

뱀다리 하나 : 본문에 나오는 손자의 유명한 문구는 '백전백승'이 아니라 '백전불태(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Commented by 시대유감 at 2008/07/10 08:46
고맙습니다. 재미가 있으시다니 다행입니다. (__)
관용구나 사자성어에 약해서 다른 분의 지적은 늘 도움이 됩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의성어 의태어지만요. ^^;
지금도 원문에 비해 너무 오버스럽게 돌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저 스스로도 좀 고민됩니다만, 아무래도 원문 그대로 가면 밋밋한 부분이 너무 많더군요.
아마 그래서 SS 번역이 어렵다고들 하는게 아닐지... 이 SS도 서술은 대부분이 '봤다' 나 '말했다' 정도로 끝나고, 묘사도 솔직히 뛰어난 건 아니니 말이죠.
그래도 재미가 있는 건 역시 원작에서 미진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잘 파고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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