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인 제독 5화 : 파괴의 항아리


허무의 요일, 해가 뜨기 전.
성 아래에 있는 발리에르 공작의 별채.

양은 겨우 궁중 경비병들의 취조에서 해방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마법을 쓸 수 없는 양이 푸케가 아니라는 건 자명한 일이었기에 단순히 사정청취를 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루이즈와 공작도 목격한 사실과 피해 내용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병들은 별채에서 사라졌다.
그 후 왕궁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소란스러웠고, 아직 밤이 다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흙더미의 푸케가 발리에르 가의 비보를 강탈했다!』 는 소식이 트리스타니아 전역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발리에르 가의 별채에 있던 루이즈와 양의 귀에는 그런 소문이 흘러 들어가지 않았다.

다행히 엘레오놀과 호위병들이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장녀에게 달려간 공작과 루이즈는 엘레오놀이 단순히 기절해 있을 뿐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푸케의 골렘은 이미 너무 멀리 있었기에 쫓아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근처의 나무 줄기에는 『다이아 도끼, 확실하게 받아갑니다. 흙더미의 푸케』 라는 표식이 남겨져 있었다.
아버지와 동생이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뜬 엘레오놀은 푸케에게 도끼를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다시 졸도해버렸다. 지금은 별채의 침대에서 쉬는 중이다.

이윽고 점심때가 가까워졌다.
어젯밤의 소동으로 밤을 새다시피 한 루이즈와 양이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에서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은 인사 대신 커다란 하품을 나누고 있었다.

“후아~암. 좋은 아침입니다, 미스 발리에르. 공작님은 어디에?”
“후 아아~암. 안녕. 벌써 성에 가셨어. 푸케의 수색대가 어떻다던가 하셨는데. 너무 졸려서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엘레오놀 님은?”
“아직 자고 있어. …… 아무래도 지금은 그냥 내버려 두자.”

루이즈의 말을 들으며 양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말았다.

“아아, 드디어 돈과 인연이 없는 생활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더니. 이래선 너한테 치료비를 갚는 건 당분간 무리겠구나.”

그와는 대조적으로 루이즈는 ‘엣헴!’ 하며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고 있다.

“그 점이라면 문제 없어!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치료비의 세 배를 주셨으니까!”

그렇게 말한 루이즈가 손뼉을 치자 별채의 메이드들이 짐 차에 놓여진 커다란 상자를 가져왔다.
뚜껑을 열어보았더니 안에는 에큐 금화가 들어 있었다.

“그럼, 약속대로 3분의 1은 네 몫이야. 고맙게 받으라고!”
“아, 응. 고마워. 과연 발리에르 공작께선 통이 크시구나.”

양은 속으로 자기가 섬기는 주인을 루이즈가 아닌 발리에르 공작으로 바꿔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물론 소리 내어 말하지는 못했지만.






5화 : 파괴의 항아리








점심때를 지난 트리스타니아.
휴일답게 노점이 줄지어 늘어서고 주점에선 한낮부터 건배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갖가지 간판이 처마를 맞대고 있다.
푸케의 조사에 임하는 경비병과 근위대가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다니고 있었다.

양과 루이즈는 별채에서 나와 마차를 타고 쇼핑을 하러 왔다. 양은 예나 지금이나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흥미진진하다는 듯 마을의 풍경을 둘러보고 있다.

“이것 봐,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소매치기 당한다고!”

그렇게 루이즈가 주의를 주고 있긴 하지만, 양의 입장에선 입체 TV나 역사 자료에서밖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눈 앞에 현실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던 그에게 이 풍경을 신기하게 바라보지 말라는 요구는 사실상 무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응~ 알았어… 이야~ 저거 약 파는 가겐가? 우와! 병 속에 동물이 통째로 들어가 있어! 저걸 마시는 거야!?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겠다!”

콱!

어젯밤에 이어서 이번에도 양의 옆구리에 루이즈의 팔꿈치가 박혔다.
양은 기절할 것 같았지만 겨우 쓰러지고 싶은 충동을 참아냈다.

“켁, 콜록… 후우… 시, 실례했습니다. 일단은 내 옷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쇼핑을 해야지.”
“그러도록 해. 말해 두겠지만,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거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미스 발리에르.”

그런 연유로 휴일 오후에 두 사람은 양복점에서 집사에게 어울리는 옷을 주문하고, 신발 가게에 가거나 새로운 차 잎을 고르기도 하며 쇼핑을 즐겼다. … 물론 물건을 살 때는 항상 레이디인 루이즈가 잔뜩 사들인 옷이나 가방을 양이 들어야 한다는 게 정해진 규칙이었다.
발리에르 가의 마차로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짐을 마차에 실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래도 짐을 잔뜩 들고 가게와 마차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양은 이미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였지만.
저녁때가 되었을 무렵, 짐으로 가득 차버린 마차를 보고는 양은 정말 미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야… 많이도 샀다. 뭐 이 정도 샀으면 충분하겠지? 그럼, 학원으로 돌아갈까.”
“아직이야.”

루이즈의 무자비한 한 마디에 양은 지옥을 보는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저어, 루이즈 님… 이 이상 뭘 사시겠다는 건가요? 이제 필요한 물건은 전부 샀다고 봅니다만.”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걸 안 샀잖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루이즈를 보고 양은 마차 안에 산처럼 쌓여있는 짐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아직 안 산 가장 중요한 물건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루이즈는 양을 쳐다보고는 부족한 물건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하게 이야기했다.

“무기야.”

루이즈의 말은 양의 상상에선 많이 벗어난 것이었다.

“무기라니… 네가 쓸 무기?”

퍽!

양은 루이즈에게 호되게 걷어차였다.

“왜 내가 무기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당연히 ‘네 – 가 – 쓸 – 무 – 기’ 지! 다시 푸케랑 만난다면 그때야말로 붙잡아 보일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양은 입이 쩍 벌어졌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생각을 해 보다가 어떻게든 눈앞의 어린 주인도 이해할 수 있을 법한 말을 골랐다.

“난 무기 같은 건 못 써.”

양은 한껏 애를 써서 루이즈도 이해할 수 있는 말을 골랐다고 생각했지만, 루이즈는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찌릿!’ 하고 자기의 사역마를 노려보는 걸 보니 말이다.

“당신, 군인이잖아?”
“응. 나도 종종 믿어지지 않지만, 군인이었지.”
“사관학교 졸업했잖아?”
“그렇지. 아슬아슬하게 낙제점 근처에서 놀았지만.”
“그래도 당연히 무기 다루는 법은 배웠을 거 아냐?”
“그래도 당연히 할케기니아의 무기를 다루는 법은 모르지.”
“너, 총 갖고 있잖아!”

루이즈는 양의 점퍼 가슴 부분에 달려 있는 주머니를 가리켰다.
양은 가슴을 내밀고는 상체를 크게 뒤로 젖혀 거만한 태도를 취하며 대답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총을 쏴봤자 절대로 맞지 않을 걸!”

퍽! 푹! 콱! 쿵! 짝! 쾅!

양은 거리 한복판에서 루이즈의 샌드백이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무기점으로 가자. 또 어디서 푸케가 나타날지 모르니까 다음에 만나면 꼭 포승을 받게 해주겠어!
너도 그런 한 발 쏘고 끝나는 장난감이 아니라 제대로 된 칼 같은 걸 사도록 해!”
“으윽, 진짜 필요 없다니까…”

양은 정말로 무기 같은 걸 지니고 싶지 않았다. 지금 점퍼 속에 넣어둔 총조차도 할케기니아의 사람들이 악용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갖고 있는 것뿐이니까. 루이즈는 양이 지닌 총을 할케기니아의 프린트 록 총과 비슷한 물건이라고 지레짐작해버린 것 같다.

“그렇다고는 해도, 총은 언젠가 에네르기가 다 떨어지겠지. 도구로 쓸 칼 정도는 하나쯤 갖고 있으면 편리할지도 모르겠어.”

어떻게든 자기를 설득한 양은 의기양양하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루이즈의 뒤를 따라갔다.

악취가 코를 찌르는 뒷골목으로 들어갔다가, 쓰레기와 오물이 굴러다니는 길바닥을 지나 사거리로 나오자 구리로 된 간판을 루이즈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흐음. 검 모양의 간판이네. 저게 무기점이야?”
“맞아. 그럼 들어가자.”

두 사람은 돌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었다.

어둑한 가게 안에는 램프가 켜져 있었다. 벽과 선반에는 칼이나 창이 난잡하고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고. 훌륭한 갑옷도 하나 걸려 있었다. 가게 안쪽에서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쉰 살 전후로 보이는 노인네가 루이즈를 수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하지만 곧 끈 모양의 타이 매듭에 그려진 오망성을 보고는 그녀의 신분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루이즈는 성큼성큼 주인에게 다가섰다.

“어르신, 귀족 어르신, 저희는 제대로 허가 받고 장사를…”
“손님이야. 이 평민에게 맞는 칼을 좀 골라줘.”

그런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주인은 힐끗 양을 보았다.
가게 안의 무기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는 30대 정도의 학자 풍 남자. 몸은 근육질이라고 할 순 없겠고, 저 잠에서 덜 깬 듯한 눈을 보아하니 아무리 봐도 검을 휘둘렀을 것 같진 않다.

“저어, 어르신… 지금 말씀은 저쪽 양반의 무기를 고르라는 것인지?”
“그래. 무슨 불만이라도 있어?”
“아, 아닙니다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렇겠군요. 최근에는 푸케인가 하는 도적이 출몰하는 수상한 시기였습죠. 그래선지 궁정에 계신 귀족 분들 사이에서도 종에게 검을 들리는 게 유행하는 모양이라..”
“잘 알고 있잖아. 그럼 적당한 걸 골라줘.”

주인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고 생각이라도 했는지 실실 웃으며 가게 안쪽에서 가는 검을 가져 왔다. 현란한 문양이 그려진 귀족에게 어울리는 멋들어진 검이었다.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종들에게 지니게 하는 것이 이런 레이피어 종류입니다요.”

루이즈는 검을 빤히 쳐다본다.

“푸케의 골렘과 싸우려면 좀 더 큰 게 좋아.”
“아냐, 나이프가 좋다니까.”

어느 틈엔가 양이 루이즈의 뒤에 서서 호사스러운 검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보통 얼빠진 소리만 주워 섬기던 입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난 칼을 써 본 적이 없어. 하지만 전쟁이 났을 때라면 모를까, 이 칼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닐만한 물건이 아니라는 건 척 보면 알겠는걸.
우선 강도가 약해. 너무 가늘어서 상대방이 베어 오면 부러지겠지.
찌르기에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어설프게 깊이 찌르다간 뽑기가 곤란하니까 여러 적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선 쓸 물건이 못 돼.
그리고 날붙이는 날에 이가 빠지면 금세 날이 잘 안 듣게 되어 있어.
아, 푸케의 골렘을 상대하는 걸 전제로 한다면 애초에 검을 들고 맞서겠다는 발상 자체가 틀려먹었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커다란 골렘에게 칼은 통하지 않을 테고,
어차피 골렘을 조종하는 메이지를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길이도 어정쩡해. 칼집에서 뽑으려면 쓸데없는 동작이 생기니까 움직임이 한 발 늦어지지. 그러니까 적에게 선수를 빼앗길 테고, 만약 적보다 빨리 뽑는다고 해도 길이에서 뒤질 테니까 결국 이쪽에서 가까이 가지 않으면 안 되니 말짱 도루묵이야.
싸울 때 적에게 선수를 빼앗기거나 간격에서 불리하다는 건 죽여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야.
또 골목길처럼 비좁은 곳이나 큰 길 같이 사람들이 잔뜩 몰릴 수 있는 곳에서 검은 불리해. 주변 사람이나 지형지물에 가로막혀서 제대로 휘두를 수가 없으니까. 발 디디기 불편한 곳에선 좀 더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무기가 유리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데도 이것 보라는 듯이 허리에 검을 차고 다녀야만 하잖아. 당연히 주변에서는 날 경계하겠지. 적을 방심하게 해야 기습도 하기 편해.
그 외에도 경계심을 갖게 하지 않는다는 건 교섭을 하기도 편해진다는 얘기야. 이런 장점들은 무기의 위력 이상으로 가치가 있는 거라고.”

아무리 봐도 별볼일 없어 보이는 남자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완벽한 전술론.
주인 영감도 루이즈도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보면… 그렇군. 작은 나이프가 좋겠어. 그것도 옷소매 속에 숨겨두었다가 재빨리 꺼내서 손에 쥘 수 있는 걸로. 아마 암기 비슷한 물건이 되겠구나.”

가까스로 양이 말을 마쳤을 때 루이즈는 작은 손으로 짝짝 소리를 내며 박수를 치고 말았다.
가게 주인도 놀랐는지 감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알아 뫼시지 못했구만요. 아무래도 알 만큼 아시는 양반인가 봅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런 초라한 꼬락서니를 봐서는 어서 굴러먹던 햇병아린가 했더니, 이야~ 놀랍구만.”

불현듯 어딘가에서 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잡하게 쌓아 올려진 검들 속에서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났다.
양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가까이 가보니 거기엔 날밑을 찰칵찰칵 거리면서 말하는 녹슨 낡은 검이 있었다.

“우와, 뭐야 이거? 말하는 칼이 있다니 신기하네.”
“헤헤, 놀랐구만! 델프링거라고 한다. 잘 부탁해, 아저씨!”

아저씨라는 말을 들은 양은 약간 비틀거렸다.
‘형이라고 불러 줘!’ 같은 뻔뻔한 희망은 품고 있지 않았다. 이미 젊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라는 걸 자기 스스로도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아저씨』 라는 한 마디는 그의 가슴을 후벼 팠다.

“이봐, 델 공(公)! 손님한테 실례되는 소리는 하지 마!”
“뭔 소리냐? 아저씨는 아저씨지! 물론 내 입장에서 보면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햇병아리지만.”

몇 번이고 아저씨라 불린 심리적 충격에 괴로워하면서도 양은 검을 손에 잡았다.
표면에는 녹이 슬어 빈말로도 보기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얄팍한 외날검이었다.

“이거, 인텔리전스 소드?”

양의 뒤에서 루이즈가 신기한 듯 검을 쳐다본다.

“그렇습니다요, 젊은 마님. 의지를 지닌 마검, 인텔리전스 소드올습죠. 어쩌다가 어디의 술 취한 미친 마술사가 만들어낸 걸까요? 칼을 떠들게 하다니…”

델프링거에 대한 주인의 푸념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으나 양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신기한 듯 검의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있다.

“흐음… 신기하네. 뭐 하러 검에게 말을 하게 하는 마법을 걸었을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런 양의 중얼거림을 검은 대충 흘려 듣고 있는 모양이다.
조용히 양을 관찰하는 듯 입을 다물고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검은 작은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간 떨어지겠구만. 내가 잘못 봤다. 설마 이런 멋없는 아저씨가 『사용자』 일 줄이야.”
“『사용자』?”

뜬금없이 익숙지 않은 말이 튀어나와 양은 어리둥절해 있다.

“흥, 자기 실력도 모르는 건가? 뭐, 좋아. 아저씨, 날 사라.”

‘날 사라’ 는 말을 듣고는, 양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얼마 후 양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필요 없어.”
“뭐라고!?”

이 녹슨 검에게 얼굴이 있었다면 눈이 점만큼 작아졌을 것이다.

“왜, 왜!? 왜 필요 없다는 건데!?”
“그걸 왜냐고 물어봐도… 아까 말한 대론데.”
“큭.”
“재미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무기로서는… 난 못 쓰겠는걸. 전쟁에 나갈 생각도 없고.”

검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이번엔 주인이 히죽거리며 웃는다.

“들었는가, 델 공? 역시 이 양반은 보는 눈이 있으신 모양이구만.”
“시, 시끄러! 이 자식, 이쪽으로 와봐! 콧구멍 없이 생활하게 해주지!”
“허!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이렇게 됐으니 어르신. 이 나이프 10개 세트는 어떠십니까요? 길이는 15 산트에 가늘고 양날입니다. 손에 들어도 되고 던져도 되는 좋은 물건입니다요. 이 두 개는 튀어 나오는 타입과 접이식이라…”

주인과 루이즈는 안쪽에서 나이프 고르기를 시작해 버린 듯하다.
양의 흥미도 나이프 쪽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델프링거는 난잡하게 쌓아 올려진 검 무더기에 돌려 놓으려 했다.

“자, 잠깐만 기다려! 날 사두면 진짜로 도움이 된다니까! 『사용자』에겐 최고의 검이라고! 아니, 좀 믿어보라니까!!”

필사적으로 사정하는 인텔리전스 소드를 보고 양도 그만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녹슨 검을 살펴보았다. 찬찬히, 꼼꼼하게, 차분하게 살펴본다.
그러나 결국 한숨을 한 번 더 쉬었을 뿐이다.

“… 하다못해, 뭐에 도움이 되는지 좀 말해줄 수 있을까?”
“오, 오오! 듣고 놀라지나 마라! 나를 사면 말이지…”

검은 소리 높여 외쳤다. 자신의 장점을.

“말벗이 생긴다!!”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웃어야 할지 기가 막혀 해야 할지, 아니면 딴지를 걸어야 할지 망설였다.
그래서 결국 주인은 미친 듯이 웃어댔고, 루이즈는 기가 막혀 했으며, 양은 「뭐야, 그게」 하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결국 검으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자기를 사줄 것을 애원하는 델프링거의 끈기에 진 양은, 장검을 등에 지고 나이프 세트 한 벌을 손에 쥐고서 가게를 나왔다.



이미 날도 저물어 길이 어둑어둑했다.
짐을 잔뜩 실은 발리에르 가의 마차가 학원으로 가는 길을 한가롭게 달려가고 있었다.

양은 우두커니 창문에서 두 개의 달을 바라보고 있다.

“달빛도 달이 두 개 있으면 더 밝아지는구나.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어두컴컴한 밤길을 마차로 막 달려도 괜찮아?”

루이즈는 하품을 하면서 졸린 듯이 대답했다.

“괜찮아~... 후아암… … 이 길은 제대로 정비가 되어 있고, 위험한 곳도 없으니까. 천천히 가면 아무 일 없이 학원에 도착할 수 있어.”

바닥에 놓여진 장검이 칼집에서 칼집에서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그건 그렇고, 양이라고 했나? 못 보던 옷인데 그건 어느 나라 거냐?”
“아, 이건 내 나라의 군복이야. 내가 살던 나라는 좀 먼 곳에 있어서 말이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마부는 천천히 밤길에 마차를 몰았다.
학원에 도착한 건 결국 밤이 깊어서였다.

학원 문을 빠져 나온 루이즈는 크게 기지개를 켠다.

“으~응… 겨우 도착했네. 별일이 다 있었지만, 일단 나는 목욕하러 갔다 올게. 너희들은 짐을 방으로 옮겨 둬.”

그렇게 말하고 루이즈는 서둘러서 기숙사 탑으로 들어가 버렸다.
짐을 방으로 옮겨 두라는 명령을 받은 양과 마부는 마차에 잔뜩 쌓인 짐 더미의 산을 바라본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고 포기한 듯이 한숨을 쉬고 말았다.


마부와 양은 겨우겨우 모든 짐을 루이즈의 방에 옮겨놓았다.
양은 벌써 숨을 헐떡거리면서 기숙사 탑 입구의 계단에 주저앉아 녹초가 되어 있다.

“수고했어~ 고마워~”

비틀대는 손을 흔들며 양은 마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쪽이야말로 고맙지. 피차 고생하는구만.”

마부도 양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루이즈의 방 문을 연 양의 눈에 난잡하게 쌓여 있는 짐의 산이 보인다.
이걸 또 한번 정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그만 현실도피를 하고 싶어졌다.

“안~녕, 사역마 씨~”

산처럼 쌓여 있는 짐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던 양의 바람이 신인지 악마인지에게 전해진 듯하다. 등뒤에서 그를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를 듣고 양은 자기의 소원을 들은 것은 악마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저어~기? 사역마 씨도 차암~”

들리지 않는 척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무리겠지. 아무래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양의 등줄기에 손가락을 스르르륵 하고 위 아래로 문질러대고 있었으니까.

각오를 하고 돌아보자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 서있는 건 퀴르케와 타바사였다.

“안녕하십니까, 미스 체르프스트. 그리고 미스 타바사.”

어쨌든 양은 남남처럼 서먹서먹하게, 그러나 예의 바르게 머리를 숙였다.

“싫다니까~ 계속 서먹서먹하게 굴기는. 그건 그렇고, 잠깐 시간 괜찮아?”
“아, 죄송합니다만 벌써 밤이 깊었으니 내일 뵈면 안되겠습니까?”

무난한 말로 부드럽게 거절하면서도, 양의 다리는 한발 한발 루이즈의 방으로 뒷걸음질치고 있다. 하지만 퀴르케도 한발 한발 거리를 좁혀 오고 있다.

“어머 어머, 어때서 그래~ 밤은 기니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자~세~하~게 듣고 싶은데?”

어느 샌가 양은 루이즈의 방안까지 뒷걸음질친 상태였다. 그리고 퀴르케도 방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타바사도 마찬가지였다.

“저어, 그게… 내일도 학원에 수업이 있으…”
“우후후후… 지루한 수업보다 당신이 해주는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을 것 같은걸.”

산더미처럼 쌓인 짐에 가로막혀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게 된 양에게 퀴르케가 느긋하게 몸을, 특히 가슴을 바짝 들이댄다.

“그 • 러 • 니 • 까… 얘기 좀, 해줄래요?”
“무, 무슨 이야기를, 말씀이신, 가요?”

양은 인기가 없다.
딱 잘라 말해서 여자에게 인기 있는 타입이 아니다.
서로 좋아했던 여자는 있었고, 중위 시절부터 그를 짝사랑했던 연하의 아가씨와 결혼도 했다. 하지만 그건 그라는 인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고, 결혼도 취향이 남달랐던 연하의 아가씨가 그에게 한 눈에 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보기에 따라서 어쩌다가 한 번 잘 생겼다는 말을 들을 법한 수준의 얼굴. 언제나 무난하게만 보이는 태도. 졸린 듯이 반쯤 감겨있는 눈. 조금 굽어있는 등. 센스 없는 농담. 운동치. 아무리 탈탈 털어봐도, 좋게 말해주려 해도 여자가 죽자 사자 달려들 만한 타입이 아니다.
양 스스로는 영웅이라 불리기 시작했을 때, 고위 장교가 되었을 때부터 지위를 이용해 배우자를 자유롭게 고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런 건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벽창호였다.
그러니 퀴르케의 섹시 공격에 꼴사납게 도망치기만 하는 양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양은 땀을 폭포수처럼 뻘뻘 흘리고 있었다.

“있잖아… 푸케한테 도끼를 빼앗겼다는 얘기, 정말이야?”
“… 아, 그 이야기였나요…”

양은 마음이 놓임과 동시에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남자로서의 당연한 반응으로, 절대로 비난이나 중상모략을 당할 이유까지는 되지 않을 것이다.

“잠깐, 남의 방에서 뭣들 하는 거야.”

마침 루이즈도 목욕탕에서 되돌아와 문을 열어놓은 채로 이마에 힘줄을 잔뜩 튀어나오게 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학원 안뜰의 가로수들 주변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만 로브를 뒤집어쓴 인물은 손에 도끼를, 정확히는 도끼의 머리 부분을 들고 있었다.

“후후후… 정말,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어.”

그 인물은 긴 주문을 영창하고는 지팡이를 땅을 향해 휘둘렀다. 흙이 소리를 내며 솟아오른다.
로브를 걸친 인물은 자기가 만들어낸 흙의 산 위에 올라탄 채 서있었다. 흙의 산은 사람의 모양으로 변하고, 검은 로브의 메이지는 그대로 그 인형의 왼쪽 어깨에 올라탔다.

“글쎄, 이 『흙더미의 푸케』 님의 골렘으로도 학원 보물 창고의 벽을 때려 부수는 건 무리겠지. … 하지만 말야.”

골렘은 오른손을 왼쪽 어깨에 앉은 푸케에게 뻗는다.
푸케는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골렘의 손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다시 지팡이를 흔들어 『연금』 의 마법을 걸어 골렘의 손을 강철로 바꾸었다.

“어떤 마법에도 상처 하나 나지 않는 다이아보다도 단단한 이국(異國)의 도끼.
여기에 내 골렘의 힘을 더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골렘은 강철의 주먹에 탄소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도끼를 끼운 채로 보물 창고의 벽을 향해 크게 팔을 휘둘렀다.



심야의 학원에 굉음이 메아리 쳤다.
그와 동시에 땅울림이 모든 탑을 진동시켰다.

“뭐!? 뭐야?”
“이건! 지진이야!?”
“우, 우왓, 짐이!!”

루이즈와 퀴르케와 양이 갑작스런 흔들림 때문에 바닥에 쓰러질 뻔 한다.
난잡하게 쌓여 있던 짐들이 루이즈 일행이 있는 쪽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짐 속에 파묻혀 납작해지고 말았다.

“『레비테이션』.”

방이 흔들리는데도 동요하지 않고 무너지는 짐에도 휩쓸리지 않았던 타바사가 지팡이를 휘둘러 산처럼 쌓인 짐을 치워버렸다. 세 사람은 아픈 몸을 주무르며 일어났다.

“아야야야야…. 대체 뭐야.”
“다들 무사하구나. 뭘까, 지금 그건… 지진일까? 이 부근에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걸까?”
“좀 전의 굉음, 뭐였을까... 타바사, 실피드를 불러봐!”

타바사는 창가에 서서 휘파람을 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풍룡이 날아왔다.
모두 서둘러서 풍룡의 등에 타고 하늘에 떠서 학원을 둘러보았다.

“오오, 이게 용인가! 대단해~ 어떻게 이런 작은 날개로 날아다니는 걸까.”

그런 양의 놀란 목소리는 바람과 함께 뒤쪽으로 사라져 간다.


학원 중앙의 본관 탑에는 큰 구멍이 뚫려있었다.
안뜰에는 땅을 부자연스럽게 도려낸 듯한 흔적이 있다.
그리고 학원 근처의 숲에선 사라지고 있는 거대한 골렘의 모습이 보였다.
루이즈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앗! 저건 푸케의 골렘!!”
“타바사! 서둘러서 푸케를!”

‘쫓아’ 라고 말하려고 했던 퀴르케였지만 이미 늦었다.
도망치던 골렘은 갑자기 폭삭 하고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풍룡이 골렘의 잔해인 흙의 산 위에 내려선다.
네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미 푸케의 모습은 거기에 없었다.



트리스테인 마법학원은 밤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집을 들쑤셔놓은 것처럼 시끄러웠다.
피해를 입은 것은 보물 창고의 벽과 학원의 비보인 『파괴의 항아리』.
보물 창고의 벽에는 『파괴의 항아리, 확실하게 받아갑니다. 흙더미의 푸케』 라는 범행 성명문이 남겨져 있었다.
학원의 교사들은 보물 창고에 모여들어 벽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보고는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교사들은 당직 담당이었던 귀족이 누구냐, 평민 경비병 따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며 각자 멋대로 소리를 지르고는 책임 전가를 시작했다. 바깥에는 안쪽을 불안한 듯 바라보는 메이드들의 모습도 보인다.
당직을 맡았던 귀족은 미세스 슈브르즈였다. 그런데 당직을 서고 있었어야 할 그녀는 자기 방에서 달려왔다. 그것도 잠옷 차림으로. 보물 창고에 뚫린 구멍을 본 그녀는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도망치는 푸케의 골렘을 목격한 루이즈, 양, 퀴르케, 타바사도 보물 창고로 달려왔다. 교사들은 양을 제외한 여성 멤버들에게 범행이 일어났던 현장과 상황에 대해 과하게 따져 물었다. 양은 평민이고, 사역마였기 때문에 그에게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트기 전의 보물 창고에서 양은 심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주변 상황을 둘러보고는 부랴부랴 달려온 오스만과 콜베르의 이야기에, 그리고 마찬가지로 허겁지겁 달려온 메이드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미세스 슈브르즈가 당직을 제대로 서지 않았다고는 해도… 어차피 제대로 당직을 서는 교사는 없다네…
―― 이 학원은 메이지로 가득한 곳. … 설마 도둑에게 습격 당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 목격자는 이쪽의 세 명… 범행 후, 도망치는 골렘을 추적했으나 푸케는 발견하지 못하고…
―― 벽은 스퀘어 클래스의 메이지들이 고정화를… 푸케의 골렘으로도 구멍을 뚫는 건 무리…
―― 『파괴의 항아리』는 학원의 비보… 변상은 누가…


양은 『파괴의 항아리』가 담겨있던 커다란 케이스 앞에 섰다. 거기엔 왕궁에서 돌아올 때 봤던 것과 같은 필적으로 범행 성명문이 쓰여 있었다.

양은 겨우 교사들의 질문 공세에서 잠시 해방된 루이즈에게 달려갔다.

“저기, 미스 발리에르. 도둑맞았다는 『파괴의 항아리』 말인데, 대체 어떤 물건이야?”

질문을 받은 루이즈는 손가락을 턱에 대고는 눈을 위로 뜨며 ‘으음…’ 하고 생각에 빠졌다.

“음, 뭐랄까. 나도 잘은 몰라. 본 적은 있지만 어떻게 쓰는지, 무슨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래… 대체 어떤 모양인데?”
“응? 모양은… 항아리라는 이름이 붙어 있긴 하지만, 되게 이상했어. 이름은 항아리면서 뚜껑이 없으니까 열 수가 없는 걸.”
“뚜껑이, 없다고?”
“그래, 그러니까… 이런 모양.”

루이즈는 손가락으로 벽에 『파괴의 항아리』 의 실루엣을 그렸다.
그 실루엣을 본 양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았다. 목이 수직으로 꺾이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스러울 정도로.

“항아리… 가 아니구나.”

양의 솔직한 감상에 루이즈도 고개를 끄덕인다.

“응. 보물 창고를 견학했을 때, 다들 그런 소릴 했어. 그치만 항아리라는 말 말고는 딱히 들어맞는 말이 없었던 것 같아.”
“으음… 형태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는데.”

루이즈는 보물 창고 밖에 모여있던 메이드 중 한 사람에게 종이와 펜을 가져오게 해서, 간단한 그림을 그렸다.
양은 그 그림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응시하고 있었다.

“정말 이렇게 생겼어!?”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양의 표정에 루이즈는 조금 압도되어 버렸다.

“으, 으응. 맞아. 뭐 어슴푸레 기억하는 거라서 좀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양은 루이즈에게 펜과 종이를 빼앗아 들고, 콜베르의 옆으로 갔다.

“죄송합니다. 하나 여쭙고 싶습니다만… 『파괴의 항아리』 라는 물건은 이런 모습임에 틀림없습니까?”
“네?”

갑자기 옆에서 말을 걸어오자 콜베르는 놀라면서도 종이에 그려진 『파괴의 항아리』 의 형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곧 긍정의 의미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고 말고요! 바로 이겁니다. 단지, 윗부분이 좀 이렇게… 그리고 표면에는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어서요… 이런… 문양이었습니다.”

콜베르가 루이즈의 그림에 몇 가지를 덧붙여 간다.
다 그려진 그림을 받아 든 양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림을 보고 있다.
그러다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이건 뭐에 쓰는 물건입니까?”
“네? 저기, 뭐랄까… 그저 오래 전부터 비보로서 다뤄지고는 있습니다만 사용법은 모르겠습니다.”
“아무도요? 올드 오스만도 말입니까?”

콜베르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다니던 오스만에게 질문했다.
그러나 원장은 겸연쩍어 하면서도 확실하게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그렇습니까. 매직 아이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특이한 항아리군요. 그럼 전 도움이 될 일은 없어 보이니 실례하겠습니다.”

보물 창고에서 총총걸음으로 사라져 가는 양의 뒷모습을 이상하다는 표정을 한 콜베르가 바라보았다.



보물창고를 나온 양은 급히 스즈리 광장으로 향했다. 스즈리 광장에는 벽돌로 만들어진 여성 고용인용의 숙소가 있다. 자그마하고 아담한 건물은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불이 켜져 있었다. 푸케가 일으킨 소동으로 모두 깨어나 버린 모양으로 안에서는 수런거리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양은 입구의 문을 쿵쿵쿵 하고 매우 급한 일인 듯 빠르게 두드렸다.
곧 문이 열렸다. 나온 사람은 눈부신 금발의 여성이었다.

“어머, 양 씨. 돌아왔나요? 미안하지만 지금은 좀…”
“죄송합니다! 로라 씨, 아니, 모든 분들께 급히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미스 롱빌을 보신 분은 없습니까?”

양은 평상시의 멍청한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서두르는 기세였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메이드들도 그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모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양은 분한 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떨구었지만, 금새 주머니에서 종이 조각을 꺼내어 펜을 사각거리며 뭔가를 적었다.
다 적은 종이쪽지는 로라에게 떠넘겨졌다.

“만약에, 정말 만약의 경우에 그렇다는 말입니다만… 미스 롱빌이 돌아오면 빨리 이걸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박수 쳐준 곳에서 기다리겠다』 고 전해주세요!”

양의 필사적인 모습에 영문도 모르고 로라와 다른 메이드들은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양은 학원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어디에 갔다 왔는지 몰라도 롱빌은 학교로 돌아왔다.
그녀는 문을 지나 본관 탑을 올려다보고는 보물 창고에 난 커다란 구멍을 확인했다. 그리고 본관 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에 한 메이드가 그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메이드는 롱빌을 불러 세우고는 급히 로라를 찾으러 뛰어갔다.

학원 옆에 있는 숲의 나무 그늘에선 양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저기, 일어나 주시겠어요?”

롱빌이 그의 머리 위에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이보세요! 당신이 부르지 않았나요!”

이번엔 몸을 흔들어 보았다. 그래도 양은 ‘우웅…’ 하고 항의하는 듯한 신음 소리를 냈을 뿐, 여전히 일어나지 않는다.
그녀는 지팡이를 꺼내 양에게 들이대었다.
그리고 지팡이를 가볍게 위로 올리자 동시에 양의 몸도 두둥실 떠올랐다.
이번에는 지팡이를 내렸다.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양의 몸은 땅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아야야야야야야…. 뭐, 뭐야, 대체!?”
“’뭐야’ 가 아니죠! 이 바쁜 때에 사람을 불러놓고는 잠이나 푹 자고 있다니, 무슨 생각이신가요!”

롱빌은 양의 옆에서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딱 버티고 서 있었다.
그녀를 올려다본 양은 겨우 꿈나라에서 돌아와 허리를 문지르며 당황한 듯 일어섰다.

“아차, 죄송합니다. 실은 어제도 오늘도 온갖 소동이 벌어져서 계속 중노동을 했거든요. 잠깐 눈 좀 붙인다고 했던 게 그만 푹 잠들어 버린 것 같네요.”

머리를 숙이며 사정을 설명하는 양을 보고 롱빌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후우…’ 하고 한숨을 쉰 그녀는 가슴께에 지팡이를 돌려놓고는 로라에게서 받은 편지를 꺼냈다.

“그것보다 이 편지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신 모양이네요.”
“네, 맞습니다. 역시 그 마크를 알고 계셨군요.”
“그건… 그렇죠. 보물 창고에서 목록을 만들 때 봤어요. 이건 『파괴의 항아리』 의 표면에 그려져 있던 몇 개인가의 그림 중 하나죠.”
“네, 그렇겠지요. 어쨌든 그건 틀림없이 제 나라의 물건일 테니까요.”

롱빌의 눈이 금세 가늘어졌다.

“그건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파괴의 항아리』 가 당신의 나라의 물건인가요?”
“음,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살던 세상의 물건이라고 해야겠죠. 만들어진 나라는 다르고, 이미 그 나라는 멸망해 버렸으니까요. 그렇지만 『파괴의 항아리』 를 본 사람들이 그려준 그림을 보고 알았습니다. 내가 알던 것과 비슷한 마크가 그려져 있었으니까요.
그 마크, 국기예요. 골덴바움 왕조의.”

롱빌이 손에 든 종이조각에 그려진 그림은 그다지 잘 그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무튼 양이 그린 것이었다.
거기엔 날개를 펼친 머리가 두 개인 독수리… 같은 동물이 그려져 있었다.
은하제국군의 마크, 골덴바움 왕조를 상징하는 문장을 그릴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롱빌은 그게 무엇인지 알아본 모양이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과연, 그런 문장이었군요… 하지만, 그게 꼭 급히 전해야만 했던 일인가요? 아시는 대로 푸케 때문에 학원은 발칵 뒤집어졌다고요.”

학원을 돌아보는 롱빌에게 양은 느긋하게 대답했다.

“네, 아마 지금 당장에라도 알려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실이겠죠.”

양의 느긋한 대답을 들은 롱빌에게선 느긋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날카로운 시선을 양에게 돌려주었다.

“다시 말해 어째서, 원장을 제쳐두고 제가 제일 먼저, 그것도 학원 밖에서 조용히 알려주셔야만 했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는 천천히 베레모를 고쳐 썼다.
찌르는 듯한 시선을 받고 있는 양이었지만 어디까지고 달관한 듯한 태도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건 다른 사람이 들으면 곤란한 이야기니까 그런 겁니다. 당신도, 저도 말이죠.”
“… 무슨 말씀이신지?”

그녀의 보폭이 소리도 없이 근소하게 넓혀져 비스듬한 자세를 갖춘다. 시선은 양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다.

“왜냐하면, 그게 엄청나게 위험한 물건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용 방법도 모르고서 어설프게 매만지다간 주변 몇 리그 정도는 순식간에 사라질 테니까요.”
“주변 몇 리그가 사라진다고요!?”

롱빌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비웃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진지한 표정의 양이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소환된 도끼. 웬만한 마법으로도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던 그 엄청난 기술력. 그 기술력의 방향이 다른 쪽으로 향했다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지 그녀에겐 상상도 되지 않았다.

“네, 사라집니다. 모든 게 날아가 버리고 먼지만 남습니다.
그리고 그 물건의 사용방법을 알고 있는 나도 표적이 되겠죠. 사용방법을 모르는 아이템 같은 건 단순한 짐일 뿐이니까요.”
“표적이 되다니… 푸케에게, 말입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푸케 ‘도’ 날 노리게 되겠죠. 왕궁도, 아카데미도 그 물건에 흥미를 갖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녀의 입가가 부자연스럽게 치켜 올라갔다.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실패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 사실을 제가 알아야만 하는 이유는 뭔가요? 혹시라도 다른 메이지는 믿을 수 없으니까, 제게 지켜달라… 고 말씀하시려는 건가요?”

양은 유감이라는 듯이, 정말로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틀렸습니다. 위험한 물건이니까 돌려달라는 겁니다. 푸케 씨.”

양은 당연하다는 듯 그녀에게 말했다.







5화 : 파괴의 항아리 END
by 시대유감 | 2008/06/25 20:59 | 자주번역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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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보바 at 2008/06/25 23:57
아이고 ㅠㅠㅠ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양웬리 만세..(어쩔 수 없는 팬)
Commented by 시대유감 at 2008/06/26 10:47
감사합니다. 양 웬리 팬이신 분이 즐겁게 읽어주시니 저도 즐겁군요.
제가 양 웬리라는 캐릭터를 잘 몰라서 그의 대사나 태도를 표현할 때 좀 조심스러워지곤 하는데, 부디 큰 실수 없었기를 빕니다. :D
Commented by DSmk2 at 2008/06/27 01:27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델프링거...
Commented by 시대유감 at 2008/06/27 09:41
마치 "[판매] 말벗이 생깁니다 인텔리전스 소드 & 단검 10종세트 특별판매 39,800원!!" 하는 거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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